슈틸리케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 해도 됩니다"
호주에 1-2 패배 우승 놓쳤지만 월드컵 대표팀에 엿 던졌던 팬들 공항 마중나와 투혼에 꽃 선물 엿 대신 꽃이 날아들었다. 호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거둔 축구대표팀이 1일 귀국길에 엿 대신 꽃을 받았다. 지난해 6월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1무2패)에서 탈락한 축구대표팀은 인천공항에 도착해 엿 세례를 받았다. '근조(謹弔), 한국 축구는 죽었다'고 쓴 현수막을 든 팬은 "축구대표팀이 국민들에게 엿을 먹였으니 나도 엿을 던지는 거다"고 분노했다. 당시 본지 기사의 제목은 '꽃 대신 엿이 날아들었다'였다. 불과 7개월 사이 축구대표팀의 귀국길 모습은 확연히 달라졌다. 아시안컵에서 투혼을 불사른 대표선수들을 보기 위해 이날 인천공항에는 1000여 명의 팬이 몰렸다. 많은 소녀 팬들은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듯 환호성을 질렀다. 일부 팬들은 선수들에게 꽃을 던지거나 전해줬다. 축구팬 김석진(38) 씨는 "호주전 응원구호가 '호주는 시드니, 한국은 꽃피리'였다. 비록 호주는 시들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축구는 꽃을 피웠다"고 말했다. '더할 나위 없이 잘했다, 흥해라 손흥민'이란 현수막을 든 팬들도 있었다. 인기 드라마 '미생'에 나온 명대사 '더 할 나위 없었다. YES!'를 빗댄 표현이었다. 지난해 9월 지휘봉을 잡은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의 최우선 목표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다. 아시안컵 주장 기성용(26.스완지시티)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해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겼다. 아시안컵을 통해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대표팀 위상도 높아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대표팀은 아시안컵 조별리그 1.2차전에서 오만.쿠웨이트를 상대로 진땀승을 거뒀다. 알랭 페랭(59) 중국 감독은 아시안컵 8강 상대에 대해 "한국보다는 호주를 더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한국 축구가 언제부터 이런 취급을 당했냐"며 똘똘 뭉쳤다. 태극전사 유니폼에 새겨진 '투혼'이라는 글자가 부끄럽지 않게 뛰었다. 골키퍼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은 우즈베키스탄과 8강전을 이긴 뒤 "어디 한 곳이 부러지더라도 무실점을 지키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부상으로 중도 하차한 이청용(27.볼턴)과 구자철(26.마인츠)은 휴대폰 메신저 단체 대화방을 통해 동료들을 응원했다. 1일 호주와 결승전을 앞둔 대표팀 라커룸에는 태극기와 함께 이청용과 구자철의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진정한 원 팀(one team)이었다. 한국은 호주와 결승전에서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23.레버쿠젠)이 기성용의 패스를 받아 왼발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팬들이 원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축구였다. 손흥민은 광고판을 넘어 한국팬들이 모인 관중석으로 몸을 던졌다. 대표팀과 팬들 사이를 가로막았던 불신의 벽이 무너지는 장면이었다. 교체카드 세 장을 모두 소진한 뒤 맞은 연장전에서 장현수(24.광저우 부리)는 근육경련을 참고 끝까지 뛰었다. 연장 전반 15분 한국은 제임스 트로이시(27.쥘테 바레험)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석패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어로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 해도 됩니다"고 말했다. 외신들도 한국 축구를 칭찬했다. AFP통신은 아시안컵 베스트5에 대회 MVP로 뽑힌 마시모 루옹고(23), 팀 케이힐(36.이상 호주), 오마르 압둘라흐만(23.UAE)와 함께 기성용과 손흥민을 뽑았다. 호주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아시안컵 최고의 감독으로 우승국인 호주의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아닌 슈틸리케 감독을 뽑았다. 대표팀은 1일 소속팀으로 곧바로 합류한 남태희(24.레퀴야) 등을 제외하고 17명이 입국했다. 팬들은 결승전에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김진수(23.호펜하임)에게 질책이 아닌 큰 박수를 보냈다. 팬들의 격려에 김진수는 "두리 형에게 우승컵을 안기고 싶었는데 실패했다"며 "그래도 두리 형이 착해서 봐줄 것이라고 본다"고 말하며 웃음을 되찾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회 전에 우승을 하겠다고 확신하는 약속을 드리지 않았다. 다만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을 위해 힘쓰겠다는 점 한 가지 약속 드렸다"면서 "우리 선수들이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시드니=김지한 기자, 박린 기자